2026.08.11 (화)

  • 맑음동두천 26.3℃
  • 흐림강릉 24.4℃
  • 구름많음서울 26.7℃
  • 흐림대전 24.4℃
  • 구름많음대구 25.2℃
  • 구름많음울산 26.2℃
  • 흐림광주 26.3℃
  • 흐림부산 26.6℃
  • 흐림고창 25.1℃
  • 흐림제주 27.6℃
  • 구름많음강화 24.8℃
  • 흐림보은 23.5℃
  • 흐림금산 24.2℃
  • 흐림강진군 25.5℃
  • 흐림경주시 25.6℃
  • 구름많음거제 25.6℃
기상청 제공

특별기사

[인터뷰] "천 원짜리가 쌓일 때 가장 행복했어요"… 대구 상인떡볶이 신영희 사장의 '간절함의 레시피'

[AI시대 생존기,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는다②] 챗GPT와 함께 만든 노포식 떡볶이의 생존법
대구 상인동 5평 남짓한 분식집에서 만난 신영희 사장의 인생 2막

대구 상인동의 한 골목, 5평 남짓한 작은 분식집 앞에는 오후만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줄이 늘어선다. '상인떡볶이'다. 노포식 매운 소스에 튀김 냄새가 뒤섞인 이 작은 가게의 주인은 신영희 사장. 그는 요리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사업 실패로 빚을 지고, 사람이 싫어 장례식장 주방에서 1년을 숨어 지냈던 그가 어떻게 지금은 손님들이 "차별화된 맛"이라 부르는 떡볶이 하나로 승부를 보게 됐을까. 그 답은 실패와 간절함, 그리고 뜻밖에도 인공지능(AI)이라는 낯선 조합 속에 있었다.

 

사람이 싫어 택한 지하 주방, 그리고 우연한 인수
신 사장은 떡볶이 장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여러 개인사업에 손을 댔다가 대부분 실패를 맛봤다. "사업을 잘 모르면서 돈을 벌고자 그냥 뛰어들었는데 투자를 해서 많이 손실이 났다"는 그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와 잃어버린 돈으로 마음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가 택한 곳은 역설적이게도 장례식장 주방이었다. "사람도 보지 않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들어간 자리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국밥 50인분, 100인분을 혼자 끓여내고 수육을 삶으며 직원들 삼시 세끼까지 챙겨야 했다. 요리를 해본 적 없던 그에게 처음엔 "일을 못한다"는 눈총이 쏟아졌다.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익숙해질 때까지 노력해 보겠다"고 버텼고,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진 노동은 무좀과 혈액순환 장애로 몸에 남았다. 그럼에도 그는 "지하세계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우울했다"고 회고하며, 딱 1년만 버텨 마음을 치유하자고 스스로와 약속했다.

 

1년을 채운 뒤 그만두겠다고 하자 만류가 있었지만, 신 사장은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났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놀러 간 곳이 지금의 상인떡볶이 자리였다. 원래 이 자리는 유명한 납작만두 아주머니, 이후엔 국화빵 트럭 아저씨가 거쳐 간 곳. 국화빵 아저씨가 인수했지만 감당하지 못하자 신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고, 두어 주 거들던 그에게 결국 "본인이 할 일이 아니다"라며 인수를 제안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된 가게였다. "저의 주방 경험은 장례식장에서 일했던 1년이 다"였던 그가 권리금을 주고 배운 레시피는 정작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만의 특화된 떡볶이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는 돈도, 사람도 없는 생계형 창업 앞에서 오직 간절함 하나로 다시 시작했다.

밤마다 맛을 연구한 사람, 전국의 떡볶이를 찾아다니다
초창기 맛은 널을 뛰었다. 맵고 짜고 달았다. "요리를 원래 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그는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홀로 맛을 연구했다. 낮과 밤, 열이 가해지는 정도에 따라 판에 놓인 떡볶이의 맛이 계속 달라지는 이유조차 처음엔 알지 못했다. 초반엔 너무 매워 손님들이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다시 찾아오는 '매운맛 마니아'들 덕에 장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신 사장 자신이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운 걸 잘 못 먹다 보니 싫어한다"는 그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힌트를 얻었다. "나처럼 싫어하는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소화가 잘 되는 떡볶이"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는 소화 효소 역할을 하는 재료를 소스에 넣어 특유의 건강한 단맛을 구현했다. "고구마를 넣어서 달다고 생각하지만, 고구마는 그만큼의 단맛을 내지 못한다"며 시중의 고구마소스 떡볶이가 설탕이나 물엿으로 단맛을 내는 것과 달리, 자신은 건강한 단맛을 추구했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배합은 "영업비밀"이라며 웃음으로 답을 아꼈다.

 

레시피 개발을 위해 그는 발로 뛰었다. 대구 시내 떡볶이를 모조리 맛본 것은 물론 울산, 부산, 서울, 심지어 파주와 포항까지 유명하다는 떡볶이는 다 찾아다니며 시식했다. "떡볶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조금만 맛봐도 뭐가 들어갔는지 알 수 있다"는 그는 이 벤치마킹을 통해 "내 떡볶이가 맛없지 않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그가 붙든 원칙은 단순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건강 떡볶이면 건강 떡볶이에 맞는, 속이지 않는 컨셉을 잡고 그 원칙에 맞게 해야 살아남는다"는 것. 노포식 떡볶이라는 정체성 위에 튀김과 깨끗한 기름 관리를 더해 손님들의 신뢰를 쌓아왔다.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 그리고 다시 학교로
신 사장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한다. "오늘도 상인떡볶이 오시는 분들에게 행복한 웃음이 있기를, 많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튀김을 준비하며 "맛있어져라, 오늘도 잘 팔려가라"고 되뇌는 것도 그만의 의식이다. 가게는 오후 3시부터 9시까지, 주말은 온전히 쉰다. 그런데 그 휴일조차 온전한 휴식은 아니다. 토요일마다 그는 대구공업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다니며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고 있다. 현재 1학년 1학기. "배우지 않는 자는 머물러 있는 것 같다"는 그는 무작정 시작했던 창업을 이제는 체계적인 지식으로 다지고 있다.

 

기억에 남는 손님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떡볶이를 사 간 뒤 다시 찾아와 "맛있다"고 말해주는 손님들, 그리고 부산에서 일부러 걸어서 찾아온 커플. "부산과 여기 떡볶이는 분명히 차별화가 있다"면서도, 지역을 넘어 자신의 가게를 찾아준 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지점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떡볶이를 사러 온다"는 사실이다. 떡볶이는 아이들만의 음식이라는 통념을 깬 것이 그의 자랑이다.

 

천 원짜리의 행복, 그리고 가장 많이 울었던 시간
장사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신 사장은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천 원짜리가 많이 모일 때 행복했다"는 것. 한때 큰돈을 좇으며 소액을 우습게 여겼던 그는, 꾸깃꾸깃한 천 원짜리 지폐가 쌓이는 모습에서 예전엔 몰랐던 감사를 배웠다고 했다. 매출이 오르기 시작하던 시절, 모아둔 천 원짜리를 침대 위에 뿌려본 순간을 그는 "생명과 같았다"고 표현했다.


반대로 가장 많이 울었던 시간은 개업 초기,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이어진 강행군이었다. 노동 강도와 피로가 극에 달했고, 판에 놓인 떡볶이의 맛이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를 몰라 애태웠던 시절, 원하는 색으로 튀겨지지 않는 튀김 앞에서 스트레스를 받던 나날이었다.

 

밤마다 AI와 대화하는 노포식 떡볶이집 사장
가장 이색적인 대목은 신 사장과 인공지능의 관계다. "5평을 운영할 만큼의 운영자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그는, 가게를 살리기 위해 밤마다 챗GPT를 붙들었다. 처음엔 사용법도 몰라 혼잣말하듯 대화를 이어갔다는 그는 "노포식이라서 몰라도 된다"는 안주 대신, AI와 접목했을 때 전통의 방식을 어떻게 살릴지 고민했다. 그는 상권 분석에서도 AI의 데이터를 신뢰한다. "사람은 자기 생각을 얘기하지만, AI는 데이터로 얘기한다"며 특정 입지의 주간·야간 상권 특성까지 짚어내는 AI의 조언에 놀랐던 경험을 전했다.

 

가게의 마스코트 콘셉트인 '영희와 철수'도, 매장에 흘러나오는 AI 제작 로고송도 모두 챗GPT에서 얻은 아이디어다. "요즘 아이들은 영희와 철수를 모르지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노래 작사는 큰딸의 남자친구 학교 친구가 맡아 완성했다.

 

그렇다고 그가 AI에 전적으로 기대는 것은 아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감성적인 일"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인간의 감성을 무시하고 기계와만 대화하면 정신이 이상해진다. 벽 보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AI를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 표현하면서도, 결국 인간적인 것과 함께 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대면 소통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향해서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존중하지만, 결국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며 AI 시대에도 인간의 감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을 남겼다.

 

"나눔을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 앞으로 상인떡볶이가 어떤 가게로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신 사장은 담담히 답했다. "사회적으로 힘든 사람,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그는, 생계로 시작한 이 가게가 이제는 나눔의 통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제 입에 풀칠할 정도만 남기고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그는 "상인떡볶이가 잘 돼야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앞으로 후원 활동도 늘려가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실패와 상실 속에서 시작된 5평의 가게는 이제 추억의 맛, 그리고 나눔의 꿈을 함께 파는 공간이 됐다. 신영희 사장의 다음 목표는 명확하다. 노포식 떡볶이가 품은 '추억'이라는 감성을, 사람과 AI가 함께 만들어가는 시대에도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