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잠실 개표소(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평일 오후임에도 개표소 앞 광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 직장인, 수업을 마치고 달려온 대학생들이 한 손에 태극기를, 다른 손에 손글씨 종이를 들고 '잠실 참정권 집회'에 모여들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대부분은 2030이었다.
"부정선거", "재선거"의 구호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사이사이 애국가가 울렸다. 개표소 입구는 경찰이 지켰지만 이날은 물리적 충돌 없이 집회가 이어졌다. 지난 6월 3일 선거 당일 경찰력이 동원돼 농성 시민들이 강제 해산된 것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개표소 안에는 여전히 투표함과 투표용지가 남아 있는 상태다.
이번 집회의 도화선은 선관위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다. 중앙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부터 투표용지 인쇄 하한 기준을 종전 60%에서 50%로 낮췄고, 여기에 각 구 선관위의 배분 예측 실패까지 겹치며 전국 50곳의 투표소에서 용지 부족 사태가 빚어졌다. 송파·강남·광진 등 서울 동남권에서만 14곳의 투표소가 일시 중단됐다.
평일 휴가를 내고 충남 공주에서 상경한 직장인 A씨(여·29)는 "SNS에서 보고 놀라서 왔다"며 "선관위가 그런 결정을 한 게 너무 충격이다. 원래도 문제가 있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직접 와보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 분당에서 온 B씨(남·28)는 "계속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시간이 나서 나왔다"며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렇게 안 하는데, 투표용지를 50%밖에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사전 조사에서도 60% 이상이 투표하겠다고 나왔는데 그렇게 했다는 게 납득이 안 된다. 중립적으로 보려 해도 자꾸 의혹 쪽으로 생각이 간다"고 했다.
수원에서 상경한 C씨(남·32)는 "21세기 대한민국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선관위의 행태에 분노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D씨(남·70)는 "예전엔 부정선거를 단순한 음모론으로 치부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고 합리적 의심으로 바뀌었다"며 "처음엔 재선거를 외치다가 부정선거 구호로 진화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 아니겠냐"고 했다. 그는 사전투표 폐지도 촉구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출신 지역도, 연령대도 달랐지만 공통된 한마디를 남겼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법조계에선 재선거가 실현되려면 선거 결과의 당락에 영향을 줄 정도의 하자가 입증돼야 한다는 현행 선거법의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정철 개혁신당 최고위원이 증거보전신청을 제기하면서 법원이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용지 상자를 확보하려 했으나, 상자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선관위는 투표용지 약 1,900매의 소재를 확인하지 못한다고 10일 밝혔다.
여야는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광장의 시민들에게 그 속도는 여전히 더디게 느껴진다. 선관위를 향한 분노가 SNS를 타고 전국으로 퍼지는 속도에 비해, 제도권의 응답은 한참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6·3 지방선거 이후 닷새째 광장을 떠나지 않는 이들의 발걸음은, 이 사태가 단순한 행정 실수로 마무리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선언처럼 보였다.











